10분이 남았다. 남자는 그에게 남은 시간을 그렇게만 일러주었다. 시간, 분, 초, 그런 구체적인 숫자는 의미가 없는 단위였다. 그는 수감된 이후 태어나 처음으로 아주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스스로도 찌꺼기 같은 기분 한 조각 남지 않을 만큼 개운하게 잤다고 자부했는데, 남자는 그가 고작 네 시간을 잤을 뿐이라며 혀를 찼다. 그의 독방에는 시계가 없었다. 10분이 남았다는 말을 들어도, 체감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10분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벽 한 구석에 머리를 기대었다. 전구는 어제부터 불안하게 깜박였다. 수명이 다 한 것일지도 몰랐다. 이토록 평온하게 시간을 흘릴 수 있는 것조차도 낯설기 짝이 없었다……. 전구가 한 번 크게 깜빡였다. 어둠은 몇 초 간 지속했고, 또 그가 고개를 조금 들자 ..
자기야, 신세대에는 천 가지가 넘는 스펙트럼이 존재해요. 분류도 다양해. 연구자들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신세대의 실태를 조사하고 비슷한 능력끼리 그룹으로 묶어 사전을 업데이트해요. 아, 자기 살아있을 때도 나와 있었나? 어플리케이션. 음, 자기 죽은 지 얼마나 됐지. 겉보기로는 영 알 수가 없네요. 그야, 미나의 능력은 출중하니까. 윌헬미나 머레이, 알아요? 아서 홈우드의 그러니까, 이를 테면 누이 같은 사람. 물건 복원 능력자예요. 망가진 물건의 설계도만 잘 알고 있으면 원래대로 복원이 가능하죠. 그래요. 자기는 지금 「물건」으로 인식된답니다. 참 우스운 일이죠? 우리의 이능력은 시신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아요. 어찌 보면 타당하죠. 신진대사가 멈춘 고깃덩이를 사람으로 인식했다면, 어떤 신세대는 맘 편히..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눈은 사그라지고 광경이 변하자,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살은 살갗을 스친다. 가히 기형적인 광경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좁은 복도는 물 속에 가라앉아 있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베일 가까이 가져다대었다. 고작 그의 기억 속이기에 숨은 고스란히 쉬어졌다. 물살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그걸 빼면 물 속임을 느낄 만한 요소는 없었다. 그는 공기 속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무리없이 걸었다. 복도는 상당히 비좁았다.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꽤 가파른 계단이 하나 나왔다. 그는 이런 물 속에서 계단이 썩지 않았을까를 잠시 고민했으나 그래봤자 기억 속이었다. 내딛어도 계단은 무리없이 그의 체중을 견뎌내었다. 그대로 따라 올라갔다. 그에 따라 천천히 시야가 바뀌어 간다. 가라앉은 배. 그는 갑판까지 올라오고 나서야..
(전략) 우리에게는 모티브가 존재할 것이다. 이데아의 동굴 우화와 같다. 우리를 죄인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 모두는 「새장의 숲」이라는 동굴 속에 묶여있었다. 우리는 이 꿈을 꾸고 있는 주체, 「라파엘」의 무의식이 창조해낸 그림자이며 그 그림자는 그의 현실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적 능력이 아주 뛰어난 개체가 아니라면 보지 못 하고 느끼지 못 한 것을 사고 실험만으로 인식하기 어렵다. 내가 사 백 년 간 관찰한 라파엘의 지적 수준은 단 한 번도 본 적도 만난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인물상을 이렇게나 쏟아내어 만들 수 있는 인물까지는 되지 못 한다. 따라서 분명히 우리에게는 이데아가 존재할 것이다. 살아있었던 ‘라파엘’의 주변 인물, 우리의 모습과 사상, 주어진 소명과 밀접한 관련이..
제법 머리가 좋은 제자가 하나 있었다. 하이에나로 반드시 시신을 섭취해야 하는 골치 아픈 체질을 타고난 아이였기 때문에 스스로 동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는 아이였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동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모든 동물은 ‘새’와 ‘지상동물’로 나뉘어 동포를 사랑하게 구성되었다. 그 또한 다만 「동포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거리를 조금 두었을」 뿐이었다. 다시 기재하지만 그는 반드시 누군가의 죽은 시신을 섭취해야 살았고, 지상동물은 여전히 새에게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 하다. 전쟁 중임에도 적의 시신은 많이 확보가 되지 못 하는 상황에서, 그는 동포의 시신은 섭취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이는 버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굶었고 무슨 수를 써서든 ‘새’가 아..
쓰르라미가 울었다. 여름의 끝물이었다. 내일 모레면 개학이었고, 여름과 함께 끝나가는 방학을 죽는 한이 있어도 즐겨야 하겠다는 것처럼 아이들은 골목 이곳저곳 한 무리씩 몰려다니며 어울려 놀았다. 그러나 타리크 이븐 칼리드는 그늘이 진 슈퍼 앞에 꼼짝없이 붙어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그의 집안 사정은 영 좋지 않았고, 그 날 아침도 변변찮게 얻어먹지 못 한 참이었다. 먹은 게 없으니 또래들 사이에 뛰어들 힘도, 하다못해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힘도 없었다. 그의 자리는 늘 고정되어 있었다. 그에게 그나마 그늘 자리를 허락한 슈퍼 주인 할머니 말로는, 아이들은 그를 두고 붙박이 귀신이라고도 부른다는 모양이었다. “너도 가서 어울리지 그러니. 심심하지 않..
그렇게나 자랑에 자랑을 하시니, 거 형씨가 걱정하던 것과 달리 좋은 곳에 정착했음은 알겠소. 그렇지만 동시에 변함없이 매정한 구석이 있으시구만, 그래. 이름이 없어서 0번을 자처했다고. 그럼 아무도 모르고들 가는 거요? 당신이 무엇이고, 이름은 뭐고, 무슨 죄를 어떻게 지었고, 그런 것들. 약은 건 여전합니다, …… 씨. 유세프 씨는 변함이 없네. 여기는 꿈속이고, 당신의 꿈은 내가 통제하고 있으니까. 이상하네. 그렇지만 내 마음대로 당신이 사라지진 않아. 그야 타인이 일러주고 나서야 비로소 자각한 건 자각몽이라 할 수 없으니까. 왜 그런 걸 그들이 알아야 해? 몰라야 할 건 또 뭐요. 남의 일이라고 굉장히 쉽게 말하는구나. 거 다 댁 좋으라고 하는 충고요. 그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 토끼 양반은 ..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