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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르라미가 울었다. 여름의 끝물이었다. 내일 모레면 개학이었고, 여름과 함께 끝나가는 방학을 죽는 한이 있어도 즐겨야 하겠다는 것처럼 아이들은 골목 이곳저곳 한 무리씩 몰려다니며 어울려 놀았다. 그러나 타리크 이븐 칼리드는 그늘이 진 슈퍼 앞에 꼼짝없이 붙어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그의 집안 사정은 영 좋지 않았고, 그 날 아침도 변변찮게 얻어먹지 못 한 참이었다. 먹은 게 없으니 또래들 사이에 뛰어들 힘도, 하다못해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힘도 없었다. 그의 자리는 늘 고정되어 있었다. 그에게 그나마 그늘 자리를 허락한 슈퍼 주인 할머니 말로는, 아이들은 그를 두고 붙박이 귀신이라고도 부른다는 모양이었다.
“너도 가서 어울리지 그러니. 심심하지 않아?”
“심심한 것보다 배고파지는 게 더 곤란해요.”
“…… 빵 더 줄까.”
“그런 문제가 아니라……. 잘 하면 내일 아침까지 못 먹을 수 있으니까. 아껴두는 거예요.”
그렇게 대답을 하면, 가게 주인은 미묘한 표정으로 한참 입술만 우물거리다가 말없이 그의 머리를 푹 쓰다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밖에 나와 있는 날조차도 사실 손에 꼽았다. 해야 하는 부업이 밀려있지 않고, 또 가게 주인의 기분이 괜찮아 보일 때를 골라 나와야지만 빵도 얻어먹고 자리도 좀 얻어 앉을 수 있었다. 의무 교육을 다니고는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느는 것은 상식이 아닌 그런 생활과 밀접한 셈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짚자면 아니라고 고개를 젓기도 민망할 만큼 그의 집안 사정은 좋지 못 했다. 다달이 깨지는 형의 약값이나 병원비가 착실히 가계의 기둥부터 갉아먹어가고 있던 시기였다.
“조심히 가렴.”
그가 가게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을 때, 가게 안으로 손님이 들어갔던 모양이었다. 그는 가게 주인이 손님에게 건네는 인사에 놀라 고개를 바짝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어쩐지 팔뚝을 타고 닭살이 돋는다 싶었다. 그가 사는 마을은 해가 떨어지면 기온이 눈 깜짝할 새에 떨어졌다. 돌아가지 않으면 얼어 죽겠어. 그가 그런 살벌한 어휘를 입안으로 뭉개며 플라스틱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려왔을 때, 눈이 마주쳤다. 방금 가게 주인에게 인사를 건네받은 손님이 그의 앞으로 발걸음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와 마주섰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키가 큰 여자아이. 그의 마을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금발이 노을에 젖어있었다. 그 나이 무렵엔 보통 여자아이들이 조금 더 성장이 빨랐다. 그는 눈꺼풀만 몇 번 느릿하게 깜빡이며 이름 모를 여자아이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말을 한다는 발상까지는 미처 생각이 닿지 않았다.
“너 이 집 아이가 아니었어?”
여자아이의 질문은 다소 뜬금없었다. 어쩌면 슈퍼의 앞길을 오며 가며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타리크를 이전에도 몇 번 목격한 일이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타리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여기 앉아있었던 거야. ‘그냥’이라는 말은 쉽고 머쓱한 어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타리크로선 그 외의 이유를 가져다 붙일 수가 없었다. 그 외의 이유 같은 것은 실존하지 않았다.
“왜? 같이 놀고 싶으면 같이 놀면 되잖아.”
“…… 뛰어 놀다가 배고파지면 곤란하니까.”
“어려운 문제네.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만 노는 건 어렵지.”
“그렇지? 즐거운 건 도중에 멈추기 어려운걸.”
여자아이는 팔짱을 끼고 미간을 잔뜩 좁힌 채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타리크는 독심술사까지는 되지 못 했기 때문에 그저 저물어가는 석양이 만드는 짙은 그림자 속에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은 배고파?”
“…… 조금?”
“내가 네게 매일 빵을 나눠줄 테니까 내일부터는 너도 나랑 같이 놀면 안 돼?”
“…… 그렇게까지 해줄 것까지는 없는데. 그런 건 친구가 아니야.”
“네가 불쌍해서 주는 게 아니야. 너하고도 놀고 싶은데, 같이 놀다가 너만 곤란해지는 건 공정하지 않으니까. 너는 내게 네 시간을 주고, 나는 네가 곤란하지 않게 해주는 거야. 그럼 같이 놀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왜 그렇게까지 나랑 놀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내가 뭔가 특별히 재미있는 짓을 한 적이 있어? 네가 보기에?”
“딱히. 그렇지만 네가 궁금하긴 했어. 우리가 놀고 있으면, 넌 여기 앉아서 늘 우리를 보니까.”
그러니까 오늘부터 내 친구인 걸로 해.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봉투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두 손을 탁탁 마주치며 손을 털었다. 그 조그마한 손이 쑥 눈앞에 들어왔을 때 타리크는 그 손을 한참 내려다보기만 했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그의 행동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를 썼다. 그러니까 이건. 그는 조심스럽게 그 보드라운 손을 맞잡았다. 어색한 감각. 그러나 분명 가슴 어느 한 편에선 동경하던 것이었다.
“난 옐레나라고 부르면 돼. 너는?”
“…… 타리크?”
“타리크. 좋아. 친구의 이름이니까 이 몸께서 한 번에 외워주겠어.”
“고작 세 글자 가지고 생색은.”
그렇게 아무런 셈을 하지 않고 말갛게 웃을 수 있는 관계 또한 어느 정도 아주 오래 전부터 꿈꾸던 무엇이었다.
* * *
“그 땐 분명 꼬마아가씨가 나보다 컸는데 말이야, 어느새 이렇게 줄어들었…….”
말은 끝내 마무리되지 못 했다. 얇은 책상 밑으로 둔탁한 타박음이 울리자, 그의 입에서도 짧은 비명이 새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고도 옐레나의 손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학교 수업에서 배부한 프린트를 진도별로 나누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 땐 분명 작고 귀여웠는데 어쩌다 이런 능글맞은 바보가 됐는지. 일부러 그가 사용한 문장을 고스란히 답습하여 되돌려주자, 고통에 몸부림치며 책상에 바짝 얼굴을 묻고 있던 타리크는 숨죽여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이 더 좋지? 지금의 타리크는 꼬마아가씨 한정으로 이렇게 귀엽다고.”
“……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안 하면 더 좋을 텐데 말이야.”
“에이, 말은 그렇게 해도 날 사랑하면서.”
가을의 초입이었다. 그 여름 이후 계절을 몇 바퀴나 함께 보냈고, 그러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단순한 주변 상황에서부터 시작하여 감정에 이르기까지.
“그러는 너는.”
“물론 나도 사랑하지.”
처음 손을 내밀어주었을 때 반했던 걸지도 모르고. 또 그렇게 은근슬쩍 한 마디, 유일하게 변하지 않을 사실 하나를 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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