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사그라지고 광경이 변하자,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살은 살갗을 스친다. 가히 기형적인 광경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좁은 복도는 물 속에 가라앉아 있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베일 가까이 가져다대었다. 고작 그의 기억 속이기에 숨은 고스란히 쉬어졌다. 물살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그걸 빼면 물 속임을 느낄 만한 요소는 없었다. 그는 공기 속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무리없이 걸었다. 복도는 상당히 비좁았다.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꽤 가파른 계단이 하나 나왔다. 그는 이런 물 속에서 계단이 썩지 않았을까를 잠시 고민했으나 그래봤자 기억 속이었다. 내딛어도 계단은 무리없이 그의 체중을 견뎌내었다. 그대로 따라 올라갔다. 그에 따라 천천히 시야가 바뀌어 간다. 가라앉은 배. 그는 갑판까지 올라오고 나서야..
(전략) 우리에게는 모티브가 존재할 것이다. 이데아의 동굴 우화와 같다. 우리를 죄인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 모두는 「새장의 숲」이라는 동굴 속에 묶여있었다. 우리는 이 꿈을 꾸고 있는 주체, 「라파엘」의 무의식이 창조해낸 그림자이며 그 그림자는 그의 현실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적 능력이 아주 뛰어난 개체가 아니라면 보지 못 하고 느끼지 못 한 것을 사고 실험만으로 인식하기 어렵다. 내가 사 백 년 간 관찰한 라파엘의 지적 수준은 단 한 번도 본 적도 만난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인물상을 이렇게나 쏟아내어 만들 수 있는 인물까지는 되지 못 한다. 따라서 분명히 우리에게는 이데아가 존재할 것이다. 살아있었던 ‘라파엘’의 주변 인물, 우리의 모습과 사상, 주어진 소명과 밀접한 관련이..
제법 머리가 좋은 제자가 하나 있었다. 하이에나로 반드시 시신을 섭취해야 하는 골치 아픈 체질을 타고난 아이였기 때문에 스스로 동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는 아이였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동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모든 동물은 ‘새’와 ‘지상동물’로 나뉘어 동포를 사랑하게 구성되었다. 그 또한 다만 「동포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거리를 조금 두었을」 뿐이었다. 다시 기재하지만 그는 반드시 누군가의 죽은 시신을 섭취해야 살았고, 지상동물은 여전히 새에게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 하다. 전쟁 중임에도 적의 시신은 많이 확보가 되지 못 하는 상황에서, 그는 동포의 시신은 섭취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이는 버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굶었고 무슨 수를 써서든 ‘새’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