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다음 정류장은 새장의 숲(Forest Of Cage), 새장의 숲입니다. 내리실 승객께서는 두고 가시는 물건이 없으신지 잘 살펴보신 후…….」
새장의 숲
Forest Of Cage
1. 꿈의 초입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인간 문명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숲, 인간이 식별할 수 있는 길은 나 있지 않기 때문에 초행에게 좋지 않다. 이곳에서 길을 찾는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머리 위를 한 번 쳐다보라는 것이다. 그 숲의 길은 하늘을 향해 나 있다.
2. 숲의 초입을 지나 고개를 들면 조금씩 나무 위로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눈에 띈다. 대다수 목조 건물로 물리적 법칙을 무시한 채 나무가 아무리 얇아도 흔들리는 일이 없다. 그 목조 건물에 다양한 모양의 날개를 가진 인간들이 살며, 그들은 스스로를 '인간'이라기 보다는 '새'로 규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3. 숲에는 '새' 이외의 '지상동물'들의 특징을 갖는 수인들 또한 살고 있으나 그 수가 새에 비해 현저히 적다. 영토 싸움에서 조류에게 밀렸기 때문에 숲의 외곽 부분에서 간신히 서식할 따름이다. 그들은 새들에게서 숲의 주도권을 빼앗아 오고 싶어 한다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실질적으로 대대적 공습을 하지는 않고 가끔 외곽 쪽으로 헤매어 들어온 어린 새들을 잡아먹는 정도의 악행만 일삼고 있다. 간혹 외곽에서 숲의 중심부로 헤매어 들어온 지상동물 또한 대다수 새에게 사냥된다.
4. 숲의 중앙에는 숲의 외곽에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상당히 큰 고목이 존재한다. 고목에는 아무런 목조 건물이 들어서 있지 않고 오로지 사람만한 크기의 커다란 새장이 걸려있을 뿐이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으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 새장 속에 커다랗고 사나워보이는 이름 모를 새가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숲의 동물들은 그를 에바(Eva)라 칭하며 현존하는 숲의 동물들을 전부 창조한 어머니라 말한다. 숲의 동물들에 비하면 말도 통하지 않고 그저 새파란 눈동자를 번뜩이며 간헐적으로 무서운 소리나 내며 울어대기나 하는 그것을.
4-1. 유일신 에바에 대한 신앙은 숲 전반적으로 퍼져 있다. '유일신 에바께서만 아시는 일'이라는 말이 관용적으로 표현될 정도.
4-2. 수인들끼리 맺어져서 아이를 낳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하다. 숲의 동물들은 전부 종이 다르며, 남성체가 훨씬 많아 성비가 맞지 않는 것도 원인 중 하나. 보통 보름달이 뜨는 날 밤, 에바가 필요한 인원을 새로 창조하는 식이다. 새와 지상동물이 달마다 번갈아가면서 한 명 씩 태어나며 새와 지상동물 전부 예외 없이 난생(卵生)이다. 이 날이 지상동물과 새들이 대대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날이다. (양측 다 서로의 전력이 늘어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알을 확보하려는 자와 깨어나기 전에 깨뜨려서 살해하려는 자 간의 갈등이 빚어지곤 한다.) 아무래도 숲의 중앙을 둘러싼 지역이 전부 새들의 영역이기 때문에 숲 외곽에서 사는 지상동물들이 훨씬 불리하여 새들의 승률이 좋다.
4-3. 에바가 새하얀 새의 형태를 하고 있는 데다가 여태껏 새하얀 동물이라곤 태어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새하얀 머리칼과 새하얀 날개를 타고난 '라파엘(!)'은 양측 모두에게 주목받는 존재다. 통칭 '에바의 아이'인데 라파엘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어서 자기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고 있다.
! 라파엘(Raphael)(*). 통칭 라피로 산비둘기 수인. '에바의 아이'로 주목받고 있으며 만약 에바가 사망한다면 그가 새로운 창조주가 될 수 있으리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본인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임을 납득하지 못 하며 그냥 제 직업에 성실히 종사하고 있다. 그의 일은 아직 나는 것이 불안정하여 땅에 떨어진 아이들을 구조하는 것이다.
* 꿈의 주인이나 현실의 그가 사망하는 바람에 스스로 그렇다는 자각을 잃어버렸다. 그는 평생을 스스로를 앞에 나서면 안 되는 모자란 사람으로 설정해오던 사람이기 때문에 에바라는 허울 뿐인 허수아비를 만들어 창조주로 눈속임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그가 의식하고 해낸 일이 아니라(*그는 루시드 드리머가 아니다.) 그의 무의식이 조작한 것의 결과이며, 유일신 에바의 형태는 그가 인식했던 그의 어머니의 형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류장에 존재하는 꿈종족들 대다수가 그의 주변 인물에 기인한다. 처음에는 팔콘이나 밴더스내치와 같은 주요 인물들만이 존재했으나 갈수록 무의식의 재구성이 심해져 한 번 스쳐지나갔던 사람까지도 뒤죽박죽으로 섞여 태어나고 있는 것이 현 시점이다.
4-4. 그들의 이름, 직업, 삶의 이상 모두 에바가 부여한다는 신앙이 존재한다. 실제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들은 성년을 넘기면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 성장한다. 이름 또한 태어난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부모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부여한 이름인 경우는 일절 없다.
5. 연애, 결혼을 한 존재(*)들도 더러 있고 그들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친자식인 경우는 일절 없다. 전부 에바가 창조한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식. 딱히 결혼을 한 부부가 아닌 독신도 원한다면 각 수장들에게 허가를 받고 아이를 데려가 양육할 수 있다.
* 남성형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동성 결혼의 비율이 높다. 이는 이 정류장의 핵이 되는 주인이 어려서부터 20년 가까이 남성 비율이 압도적인 해적단 생활을 했던 것에서 기인한다.
6. 수인들의 수명은 종과 상관 없이 평균 300년 정도. 불사는 아니나 어느 정도의 나이를 지나면 더는 나이 들지 않는다. (* 그러나 이 '어느 정도'가 사람마다 기준이 천차만별이라서 많게는 4-50대의 모습에서 멈춰버리는 경우도 많지는 않으나 존재한다.)
7. 새들의 수장은 현 시점, 팔콘(Falcon). 매의 날개를 가진 수인.
지상동물들의 수장은 현 시점, 밴더스내치(*)(Bandersnatch), 뱀의 눈과 비늘에 가까운 피부를 가진 수인.
* 간혹 밴더스내치나 도도새와 같은 '현대'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들의 수인이 존재한다. 이는 이 꿈을 구축한 꿈의 주인이 사는 세계에는 그 같은 동물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8. 동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새장의 숲을 대다수 '숲'이라 부르나 팔콘과 밴더스내치(*)는 그곳을 주로 '새장'이라 칭한다.
* "연극은 갈등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지. 시시하고. 때문에 우린 그를 즐겁게 할 필요가 있었어. 여기가 현실이고 따라서 이 새장 외엔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이 없다고 믿도록 말이야. 그는 유달리도 우리가 대립하는 이야길 좋아했거든. 영웅과 악당. 동화적인 상황. 명확한 권선징악. 오, 그래야 하는 이유? '사람'들은 참 이유들을 좋아한단 말이야…….. 적어도 팔콘과 나는 그래야 우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9. '인간'이라는 동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인간'이란 웨이드 선생이 집필한 동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 꿈의 주인이 사망한 상태이므로 정류장은 더는 커지거나 변화되지 않고 특정 세계인 것처럼 고착화 되어있다.